📑 목차
욕창 환자를 돌보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메디폼 붙이면 상처가 빨리 낫는다”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약국에서도, 병원에서도, ‘메디폼’은 마치 상처 회복의 만능 드레싱처럼 취급된다.
하지만 실제로 욕창을 집에서 관리하다 보면, 상처가 좀처럼 낫지 않고
오히려 계속 말라붙거나 곪아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나 역시 처음엔 메디폼이 “습윤 드레싱”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여러 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깨달았다.
메디폼은 습윤 드레싱이 아니다. 그건 **‘흡수성 폼 드레싱’**일 뿐이다. 상처를 촉촉하게 유지시켜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안의 수분을 빨아들인다.

1. 습윤 드레싱의 진짜 의미 — 상처는 건조하면 죽는다
‘습윤 드레싱’이라는 단어를 곱씹어 보자.
습윤(濕潤)이라는 말은 단순히 “젖어 있다”는 뜻이 아니다.
의학적으로는 상처 세포가 생존하고 분열할 수 있을 만큼의 수분이 유지된 상태를 의미한다.
건조한 환경에서는 상처 표면의 세포가 탈수되어 죽는다.
그 결과, 죽은 세포가 딱지처럼 굳어 딱지 밑에서 새로운 세포가 자라지 못한다.
이건 마치 흙이 바싹 말라버린 화분에 씨앗을 심은 것과 같다.
물은 주지 않으면서 “왜 싹이 안 트냐”고 묻는 꼴이다.
반대로 습윤 상태에서는, 상처 표면의 세포가 수분을 머금고 활발히 이동한다.
이 과정에서 새 살(육아조직)과 상피세포가 빠르게 형성된다.
즉, 습윤 환경은 세포의 이동과 분열을 돕는 생화학적 촉진제와 같다.
1962년, 영국의 조지 윈터(George D. Winter)는 돼지 피부를 이용한 실험에서
“습윤 환경이 건조 환경보다 상처 회복 속도를 두 배 이상 빠르게 만든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이 연구는 이후 60년 넘게 상처치료학의 기본 원리가 되었다.
2. 폼 드레싱의 구조적 한계 — 흡수는 하지만 보습은 하지 않는다
그럼 왜 메디폼 같은 폼 드레싱은 ‘습윤 드레싱’이 아닐까?
메디폼은 폴리우레탄 폼(polyurethane foam)이라는 스펀지 같은 구조를 가진 재질로 만들어진다.
이 폼 구조는 상처에서 나오는 진물(삼출액)을 흡수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그래서 상처가 너무 축축할 때, 즉 삼출액이 너무 많을 때는 일시적으로 도움이 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메디폼은 삼출액을 흡수한 후, 그 수분을 다시 상처 쪽으로 되돌려주지 않는다.
즉, 흡습은 하지만 보습은 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상처 표면이 점점 마르고, 육아조직이 말라붙는다.
심하면 딱지가 형성되고, 그 밑에 염증이 갇히면서 상처가 오히려 깊어진다.
이건 특히 공동(상처 속이 움푹 파인 형태) 을 가진 욕창에서 더 심하게 나타난다.
많은 보호자들이 “메디폼을 갈아줬는데도 냄새가 난다”, “상처가 깊어졌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겉보기에는 깨끗하지만, 실제로는 표면이 말라서 재생이 멈춘 상태다.
3. “폼 드레싱 = 습윤 드레싱”이라는 허상
제약회사들은 폼형 드레싱을 광고할 때 ‘습윤 환경 유지’, ‘상처 보호’, ‘빠른 회복’이라는 문구를 자주 쓴다.
소비자는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메디폼이 습윤 드레싱이구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서 ‘습윤 환경 유지’라는 말은 삼출액을 흡수하여 겉면이 젖지 않게 하는 것을 의미할 뿐,
상처를 촉촉하게 유지한다는 뜻은 아니다.
즉, 광고 문구의 ‘습윤’은 소비자 입장에서의 ‘촉촉함’과는 다른 의미다.
실제 의료 현장에서 말하는 moist wound healing(습윤 치유) 개념과는 거리가 있다.
따라서 메디폼을 “습윤 드레싱의 대명사”로 생각하는 건,
마치 건조한 에어컨 바람 속에서 “습도 조절이 잘 된다”고 착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4. 습윤 드레싱인 비닐 랩 드레싱 — 단순하지만 놀라운 효과
아이러니하게도, 어떤 경우에는 가정용 비닐 랩이 메디폼보다 나을 때가 있다.
유튜브나 의료 커뮤니티에서도 종종 소개되는 방법인데,
상처 위를 깨끗이 닦고 멸균 거즈를 한 겹 대거나 바셀린을 살짝 바른 뒤,
그 위를 비닐 랩으로 덮는 것이다.
이 방식은 과학적으로도 일리가 있다.
비닐 랩은 공기와 수분의 교환을 거의 차단하기 때문에,
상처에서 배어나오는 삼출액이 증발하지 않고 표면에 머문다.
결과적으로 상처가 촉촉하게 유지되며, 세포 재생이 촉진된다.
다만, 이 방법은 어디까지나 경미한 욕창(1~2기 이하) 이거나
삼출액이 적은 상처에서만 유효하다.
삼출액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세균이 번식하고,
밀폐된 환경에서 산소가 부족해질 수 있다.
즉, 비닐 랩 드레싱은 ‘도구’라기보다 습윤의 원리를 몸소 이해하는 하나의 실험적 방법이라고 보는 게 맞다.
5. 어떤 습윤 드레싱이 맞는가 - 욕창 단계별 관리
욕창은 4단계로 나뉜다.
단계별로 적합한 드레싱이 다르다.
1기: 피부가 붉어지고 눌려도 돌아오지 않는 상태
- 피부가 아직 터지지 않았고, 초기 증상이다.
- 이때 중요한 것은 압력 완화와 마찰 방지다.
- 폴리우레탄 필름형 드레싱(3M™ Tegaderm™ 등)을 사용하면 좋다.
- 메디폼은 아직 필요하지 않다.
2기: 표피가 벗겨지거나 물집이 생긴 상태
- 삼출액이 약간 있으며, 통증이 동반될 수 있다.
- 하이드로콜로이드나 하이드로겔 드레싱이 가장 효과적이다.
→ 이들은 상처에서 수분을 머금고, 외부 세균을 차단한다. - 메디폼을 붙이면 상처가 건조해져 오히려 회복이 느려질 수 있다.
3기: 피하조직까지 손상된 상태
- 상처가 깊고 공동(cavity)이 생긴다.
- 삼출액이 많아 감염 위험이 높다.
- 이때는 흡수력과 습윤 유지력이 모두 필요하다.
→ 하이드로파이버(예: Aquacel) 제품이나,
폼 드레싱과 젤을 병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 단, 폼을 단독으로 쓰면 상처가 마를 수 있다.
4기: 근육, 골조직까지 노출된 상태
- 이 단계는 단순 드레싱만으로는 회복이 어렵다.
- 괴사조직 제거, 항생제 치료, 심한 경우 외과 수술이 필요하다.
- 이때는 병원 치료와 병행해야 하며,
음압상처치료기(NPWT) 같은 전문 장비가 효과적이다.
6. 습윤 드레싱 가정에서 욕창을 돌볼 때 현실적인 문제들
욕창 환자를 집에서 돌보는 보호자에게 가장 어려운 점은,
전문적인 드레싱 재료나 도구보다 “상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판단하는 감각이다.
메디폼을 붙이면 “깨끗해 보이니 낫는 중인가?”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냄새가 나거나, 색이 누렇게 변하거나, 상처 주위가 단단해지면
그건 상처가 마르고, 내부에서 염증이 생기고 있다는 신호다.
또 하나의 문제는 소독제의 과용이다.
요즘도 포비돈(베타딘)이나 과산화수소로 매일 소독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것들은 상처 속 살아있는 세포까지 죽인다.
즉, 세균과 함께 재생 세포도 모두 파괴한다.
습윤 드레싱의 핵심은 살아 있는 세포를 살리는 환경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강한 소독제를 계속 쓰면, 아무리 좋은 드레싱을 붙여도 효과가 없다.
7. 폼 드레싱 한계 상처가 낫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상처가 낫는다는 것은 단순히 딱지가 생기고 덮이는 것이 아니다.
그건 표면적인 봉합일 뿐이다.
진짜 회복은, 상피세포가 스스로 자라나 상처를 덮을 때 일어난다.
이를 위해선 산소, 수분, 온기, 영양분이 모두 필요하다.
건조한 환경에서는 세포 이동이 멈추고, 산소 전달도 방해된다.
습윤 환경은 이런 요소들을 모두 유지해주는 가장 단순하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래서 요즘은 병원에서도 “딱지를 없애라”고 가르친다.
딱지는 보호막이 아니라, 치유를 방해하는 벽이기 때문이다.
8. 진짜 습윤 드레싱을 이해해야 욕창을 고친다
메디폼은 나쁜 제품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습윤 드레싱’의 전부라고 믿는 건 위험하다.
메디폼은 흡습성 폼 드레싱으로서 일정 역할을 하지만,
상처를 촉촉하게 유지하는 능력은 제한적이다.
진정한 습윤 드레싱은 상처의 수분을 유지하고,
세포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때로는 비닐 랩처럼 단순한 도구가
고가의 제품보다 나은 결과를 줄 수도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제품이 아니라 원리의 이해다.
습윤이란, 물이 아니라 생명이다.
촉촉한 환경에서 세포는 자라나고,
건조한 환경에서는 죽는다.
이 단순한 진리를 잊지 않는 것이,
욕창 관리의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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